이지방(李芝芳) 조선시대 生沒年未詳, 조선중기의 무신으로 강릉출신, 본관은 羽溪, 자는 子華, 嘉善戶判 徵의 아들이다. 中宗 1년(1506)에 北門의 鎭將 역임하였다. 中宗이 束吉을 정벌하려고 할 때에 초토사로 삼아 보내려고 하였으나 趙光祖의 반대로 실행되지 못하였다. 후에 八道의 兵使와 判尹을 역임.
이전 조선시대 生沒年未詳, 조선중기 무신으로 本貫은 羽溪, 明宗代에 工曹參判을 지냈고, 壬亂時 王을 扈從하여 中樞府事로 승진하였다.
이일봉(李日鳳) 조선시대 生沒年未詳, 조선시대 문신으로 本貫은 羽溪, 同樞를 역임하였다.
이인호(李寅顥) 조선시대 生沒年未詳, 조선후기 무신으로 本貫은 羽溪, 哲宗 13년(1862)에 武科에 及第하여 宣略將軍 同知中樞府事 兼 昌德宮衛將을 역임하였다.
이용 조선시대 生沒年未詳, 조선중기 무신으로 本貫은 羽溪, 中宗代에 武科에 及第한 후, 선조 16년(1583)에 防禦使로 節度使를 역임하였다.
이서우(李瑞雨) 조선시대 1633(仁祖 11)∼?, 조선후기 문신으로 本貫은 羽溪, 顯宗代에 文科及第한 후 肅宗代에 工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이득성(李得成) 조선시대 生沒年未詳, 조선전기 문신으로 본관은 羽溪, 호는 東隱이다. 文宗 1년(1451) 文科에 及第하여 正言을 역임하였다. 단종때 세상이 평온치 못함을 알고 漢陽에서 삼척 交柯로 이주하였고, 吏曹參議에 贈職되었다.
이광식(李光軾) 조선시대 生沒年未詳, 조선중기의 무신으로 강릉출생, 본관은 羽溪, 자는 伯欽, 嘉善大夫 芝芳의 아들이다. 明宗 1년(1546)에 兵曹參判을 거쳐 명종 1년(1555)에 全羅道兵馬節度使로 있을 때 倭賊이 邊將들을 죽이고 10鎭을 함락시켜 軍務가 위급했으나, 일을 잘 처리하여 兵亂을 平定하였고 1557년에 慶尙道觀察使가 되었다. 집안이 엄숙하고 몸가짐이 맑고 소박했다. 그의 아들 도 明宗 8년(1553) 司導寺僉正을 거쳐 同副承旨·咸鏡北道節制使·全羅兵馬節制使·濟州牧使를 역임하였다. 그후 그는 慶尙右道兵馬使에서 파직되었다가 北兵使·會寧府使를 역임하여 北門을 三鎭하고 西塞을 再臨하니, 西北의 虞가 伏했다. 임진왜란 때 나이 80에 御駕를 西北으로 護衛하였고, 벼슬이 中樞府事에 올랐다.
이계철(李啓喆) 조선시대 生沒年未詳, 조선후기 무신으로 三陟出身, 본관은 羽溪, 자는 省吾, 호는 一西이다. 憲宗때 武科에 登第하여 海州助泥浦萬戶를 거쳐 水使를 역임하였다.
이감(李戡) 조선시대 生沒年未詳, 조선중기 문신으로 本貫은 羽溪, 中樞府事 李光軾의 아들이다. 文科及第後 명종 12년(1557)에 성절사로 明에 다녀왔고, 黃海 京畿 慶尙道觀察使를 역임하고 兵曹 刑曹 工曹參判과 大司憲을 지냈다.